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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의 독립운동가 유도발·유신영 선생 부자(父子)
이현석 기자 lhs9869@korea.kr
기사입력 : 2020-10-30 14:16:45

[충북타임뉴스=이현석] 국가보훈처가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유도발(1832.6.~1910.10(음))·유신영(1853.6~1919.3)선생 부자를 2020년 1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고 밝혔다.

유도발 선생과 유신영 선생은 부자관계로 풍산을 본관으로 하는 서애 유성룡의 10세, 11세 후손이다. 풍산 유씨 가문은 충효를 가업으로 삼았고 두 부자에게 충효는 20세기 초 일제의 국권침탈에 대응하는 가치관이었다.

부친 유도발 선생은 1910년 8월 29일 일제에 의한 강제병합이 체결되자 일제의 지배에 놓인 세상을 차마 살아갈 수 없다며 1910년 11월 11일 단식에 돌입하였으며 “종사가 망해 장차 남의 나라의 백성이 되겠으니 남은 해가 얼마 없는데 구차하게 살기를 도모하는 것은 욕된 일이 아닌가? 이후로는 다시 음식을 나에게 권하지 말라"는 유서와 함께 명정(銘旌)에 ‘대한처사(大韓處士)’로 써 줄 것을 부탁했다. 명정은 죽은 사람의 관직이나 이름을 적은 기(旗)로, 유도발 선생이 대한처사로 써달라고 한 것은 죽어도 영원히 대한제국의 선비임을 천명한 것이다.

1910년 11월 27일 단식 17일째, 유도발 선생은 향탕으로 자신의 몸을 깨끗이 씻고 죽음을 맞이했다. 그 죽음은 일제의 강제병합에 대한 강력한 항거이자, 사람들에게 항일정신을 일깨우는 울림이었다.

아들 유신영 선생은 선대의 가업을 철저히 익히고, 항일 인사들과 교류하면서 학문과 사상을 넓혀나갔다. 그리고 두 차례 의병에 참여하여 적극적인 투쟁을 전개했다. 그의 항일투쟁은 『하은유고(霞隱遺稿)』의 「행장」을 통해 확인되는데, 1895년 유인석 의진과 1896년 권세연 의진에 참여한 기록이 보인다.

1919년 1월 광무황제(고종)가 서거하자 친일파에 의해 독살되었다는 소문이 퍼지자 “나는 나이가 많아 일할 수 있는 힘이 없다. 마땅히 목숨을 바쳐 나라의 원수를 갚겠다"고 하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투쟁방법은 죽음 뿐이라며 1919년 3월 3일 독약을 마시고 자결했다.

그의 죽음은 대를 이어 일제에 투쟁하고, 남은 이들에게 맞서 싸울 것을 촉구한 것이다.

정부에서는 두 분 부자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유도발 선생에게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유신영 선생에게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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